[컨설턴트가 보는 세상] 패션업은 투자업과 비슷하다 – 10점이 나올 때까지 다트를 던져라
‘물건 좋고 싸면 장땡 아니야?’: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
일반적으로 커머스라고 할 때 ‘물건 파는 건 다 똑같은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은데요. 실제로는 식품, 패션, 뷰티, 리빙, 가전 등 카테고리별로 그 특성과 KSF(Key Success Factor)가 크게 차이나는 영역이 바로 커머스입니다. 식품이라고 해도 다 같은 식품이 아니며 신선 식품, 가공 식품으로만 구분해도 서로 간에 어마 무시한 차이가 존재하죠.
소비자 입장에서 보기엔 오픈마켓, 스마트 스토어, 톡 스토어, 쿠팡, 아이디어스 등이 다 비슷비슷한 커머스 플랫폼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카테고리별 특성이 다른만큼 각 카테고리에 최적화된 플랫폼이 존재하며, 실제로 그로 인해 플랫폼별로 잘 팔리는 상품이 의외로 엄청 많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톡 스토어로 유명한 카카오톡, 핸드메이드 중심의 아이디어스에서는 식품이 큰 비중을 차지하죠. 빠른 배송이 강점인 쿠팡은 생필품에서는 독보적이지만 패션에서는 약세를 보입니다. 최저가 검색이 용이한 오픈마켓은 또 오픈마켓에서만 잘 팔리는 상품들이 있습니다. 각 플랫폼별로 왜 이렇게 잘 팔리는 상품들이 다 다른지에 대해서는 추후 다른 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
중요한 건 카테고리별로 그만큼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물건을 팔 것인지를 정했으면 해당 카테고리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점입니다.
패션 카테고리 특징 5가지: 많은 SKU, 빠른 사이클, 불확실성, 재고 부담, 대박 상품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카테고리는 패션입니다. 패션은 대략 아래와 같은 특성을 가집니다.
(1) SKU가 많다
패션은 타 카테고리에 비해 SKU가 많습니다. 이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일단 개인별로 선호하는 스타일과 핏이 다 다르기 때문에 최대한 다양한 스타일을 구비하고 있어야 하고, 타 카테고리에 비해 어떤 상품이 잘 팔릴지 사전에 예측하기가 어렵고, 더 나아가 구경거리가 충분히 있어야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옷이 너무 적으면 살 맛이 나지 않고, 신상품을 자주 올려줘야 자주 들어와서 보고 사게 되는) 특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옷은 동일한 디자인이라고 하더라도 색상이 달라지거나, 사이즈가 다른 경우도 많습니다. 같은 디자인의 상품이라고 하더라도 3가지 색상, 3가지 사이즈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 SKU가 9배로 증가하는 겁니다. 최근 많은 신생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프리사이즈를 채택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프리사이즈로 사이즈를 1개로 통일하면 재고 부담이 갑자기 확 낮아지기 때문이죠 ^^;
이와 배치되는 카테고리 중 하나가 화장품입니다. 화장품은 의류에 비하면 초기 창업에 필요한 SKU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잘 만든 스킨이나 토너 하나로 대박 매출을 내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SKU를 늘린다고 해도, 특정 라인 하나 정도를 구축하는데 5-7개 SKU면 충분한 경우도 많습니다.
(2) 사이클이 빠르다
패션은 사이클도 빠릅니다. 계절이 바뀌면 입는 옷도 바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한데요. 적어도 3개월에 1번은 고객의 재구매를 유도할 수 있으니, 매출 성장 관점에선 아주 긍정적인 부분입니다. (반대로 내 물건을 한 번 산 고객이 3년 동안 나를 다시 찾지 않는다고 하면, 항상 신규 고객을 찾고 첫 구매를 유도해야 하니 난이도가 엄청 올라가겠지요?)
하지만 그 대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기존에 팔던 상품은 다 정리하고, 새 상품을 수십-수백 개씩 새로 기획해서 올려야 한다는 부담이 있습니다. 또한 시즌 안에 다 팔지 못한 상품은 그대로 이월 상품이 되어버리죠. 게다가 패션은 유행을 타기 때문에 작년 여름에 팔던 상품을 이번 여름에 다시 팔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패션 업체들은 시즌 말미에 30-70% 가량 세일을 해서 최대한 재고를 털고 그다음 시즌을 준비하죠.
일반적인 브랜드들은 평균적으로 재고의 7할 정도는 시즌 중에 판매하고, 남은 3할은 시즌 오프로 할인가에 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시즌 오프에도 안 팔리는 2-3년 차 악성 재고는 아웃렛으로 보내서 80-90% 할인가에 팔거나 소각을 시키는데요. 이 부분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세히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반대로 화장품은 사이클이 상대적으로 느립니다. 패션에 비하면 계절도 상대적으로 덜 타고, 동일한 상품을 내년·후년에도 팔 수 있기 때문에 판매자 입장에서는 재고 떨이에 대한 부담이 적죠. 이렇게 보면 화장품이 무조건 패션보다는 좋은 것 같지만, 그 대신 화장품은 한 번 사면 재구매 주기가 의류보다는 훨씬 길고 객단가가 낮기 때문에 신규 유저 확보를 위한 마케팅 비용이 많이 들어갑니다. (대신 화장품은 높은 마진율로 이를 커버하는 사업 구조입니다. 의류 대비 원가가 극히 저렴하고, 상품 수명이 길어 가능한 모델입니다.)
(3) 어떤 상품이 성공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의류는 감성적인 요소가 강하다 보니, 기능성 상품에 비해 특정 상품의 성공 가능성을 예측하기가 무척 어려운 편입니다. 기능성 제품들의 경우에는, 기존에 잘 팔리던 제품보다 더 기능이 좋거나 동일한 기능이어도 가격이 낮으면 충분히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류는 비슷하게 생겼어도 원단·핏에서 은근히 차이가 많이 나는 경우도 있고 같은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모델·사진에 따라 판매량이 크게 차이가 나죠.
또한 아무리 역량 있는 디자이너라 하더라도 매 시즌 모든 디자인을 성공시키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패션 브랜드의 경우 매 시즌 최소 수십 개, 많으면 수백-천 단위의 신제품을 내놓고 어떤 제품이 반응이 좋은지를 면밀하게 관찰합니다. 예상했던 제품이 터지는 경우도 있지만, 의외의 제품이 터지는 경우도 많죠. 또 썸네일 하나 교체해서 클릭·구매량이 2-3배씩 달라지는 케이스도 빈번하게 존재합니다.
(4) 재고 부담이 크다
앞서 말씀드린 3가지 이유로, 의류는 상대적으로 재고 운영 난이도가 높은 카테고리에 속합니다. 어떤 제품이 성공할지 모르고, 최대한 다양한 SKU를 깔고 고객 반응을 관찰해야 하며, 구매가 몰리는 상품이 발견되면 거기에 판매·재고 역량을 집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각 SKU별로 생산 최소 수량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100개 SKU에 대해 최소 30장씩 생산한다 그래도 매 시즌마다 재고를 3천 장은 가지고 시작해야 합니다. 대부분 의류 창업을 생각하시는 분들이 재고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동대문 기반의 쇼핑몰을 먼저 시작하시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5) 5%의 대박 상품이 90%의 매출을 만든다
아까 어떤 상품이 성공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씀드렸죠? 거기에 더해 보통의 경우 100개의 상품을 올리면 100개의 상품이 골고루 다 잘 팔려주지 않습니다. 업체별로 차이는 있겠으나, 시즌별로 고객 반응이 좋은 5% 정도의 상품이 전체 매출의 90% 정도를 가져간다고 해도 크게 과장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고객 반응이 좋은 5%의 상품은 재빨리 재생산에 들어가서 물량을 확보해야 하고, 나머지 95%의 상품은 초기 생산량을 보수적으로 가져가면서 시즌 말미에 재고가 남지 않도록 적절히 프로모션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패션 카테고리 성공 법칙: 10점이 나올 때까지 다트를 던져라
그렇다면 성공하는 패션 브랜드·쇼핑몰들은 어떤 곳일까요?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빠르게 성장한 업체들은 대부분 이러한 패션 카테고리만의 특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활용한 곳들입니다.
디자인·감각이 좋은 것은 기본
매력적인 상품군을 충분히 많이 올려야
성공하는 5%의 상품이 90%의 매출을 만든다
초반에는 어떤 상품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SKU별 재고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를 최근 10-20년 간 가장 잘했던 곳들이 모두들 잘 아시는 각종 SPA 브랜드들이고, 최근에는 중국 기반의 Shein 같은 업체들이 ‘낮은 제조 단가 + 극도로 적은 최소 수량 + 방대한 SKU + 빠른 순환’을 무기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죠.
소수의 대박 상품을 통해 전체를 하드캐리하면서 성장하는 것이 일반적
시도 횟수를 늘릴수록 성공 가능성도 올라간다
또한 이 법칙은 브랜드, 동대문 쇼핑몰 구분할 것 없이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다만 각 업체의 특성에 따라 디테일한 운영 방식이 조금 달라지는 것뿐이죠. 직접 디자인·생산을 하는 브랜드들은 시즌별로 수십-수백 개의 신상품을 기획하고 각 신상품별로 판매 수량을 예상한 뒤 최대한 보수적인 관점에서 초도 물량을 제작합니다. 반면, 재고 부담이 없고 패스트 패션에 가까운 동대문 쇼핑몰들은 매일 신상품을 업로드하는 것이 가능하죠. 그러다 대박 상품이 하나 터지면, 그게 전체를 하드캐리하면서 성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성공 케이스입니다.
패션, 어쩌면 벤처 투자와 더 비슷한
‘성공한 2-3개가 전체의 성과를 결정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신 이야기 같지 않으세요?
이는 스타트업 VC(Venture Capital)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입니다. 스타트업 투자 시 10개 업체에 투자하면 1-2개만 대박이 나고 5-6개는 평타, 나머지는 망한다고 하는데요. 바로 그 성공하는 1-2개의 업체가 전체 포트폴리오의 성과를 결정한다고 하죠.
스타트업 투자 역시 전문가들이 아무리 열심히 분석해도 특정 업체의 성공 여부를 사전에 100% 예측하기 어렵고, 그렇기에 시도 횟수를 늘릴수록 그 안에서 대박 기업이 존재할 가능성도 올라가게 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패션과 유사한 점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스타트업 패션은 투자 규모가 크고 사이클이 느리고 (적어도 3-5년, 길면 10년은 지나야 투자금 회수 가능), 패션은 훨씬 더 적은 자본으로 더 빠르게 사이클을 돌린다는 점만 다를 뿐 본질적인 성공 방정식은 비슷하다는 의미입니다.
흔히 패션은 예술, 스타트업 투자는 금융이라고 생각하죠? 이렇게 서로 달라 보이는 산업이 알고 보면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각 산업을 보는 관점도 많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혹시 추가로 궁금하신 부분 있으시면 편하게 댓글 남겨주세요 🙂 또한 제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관점일 뿐, 다른 의견도 언제나 환영합니다.